이태원 참사 – 안전의 새로운 개념

전통적인 안전의 개념은 사고 (incident)가 없는 상태, 즉 원치 않거나 (unwanted) 바람직하지 않는 (undesired) 이벤트가 없는 상태를 뜻한다. 사람이 다치는 상해 (injury), 사람이 보다 긴 시간에 걸쳐 걸리는 질병 (illness), 그리고 설령 인적 피해가 없더라도 건물이나 설비가 파손되는 물적 피해를 수반하는 사고가 없는 상태를 안전한 상태라고 줄곧 여겨 왔다. 이러한 개념에 따라, 안전을 측정하고 안전을 추구하는 행위도 결정되었다. 한 회사나 공장의 안전을 측정할 때는 일년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죽었는지, 다쳤는지, 또는 질병에 걸렸는지를 따진다. 건설업계 같은 경우에는 이러한 수치에 따라 입찰시 안전 관련 점수가 갈리기도 하니, 생존을 위해서라도 안전을 향상시켜야 하는 시대가 되었다. 안전의 초점이 불안전한 행위 혹은 인적, 물적 피해를 일으키는 행위에 맞추다 보니 자연스레, 안전 관리의 초점 또한 이러한 행위를 일으킨 원인을 찾는데 집중되어 왔다. ‘왜 조선소 노동자는 높은 위치에서 추락하게 되었나’, ‘왜 지하철 보수 작업자는 안전장치를 해제하였나’, ‘왜 제빵공장 노동자는 회전하는 기계 안에 몸을 집어 넣었나’ 등 사고의 인과관계 (causal relationship) 를 밝히는 것이 사고 조사와 안전 공학의 주요 목적이었다.

사고의 인과관계를 조사하는 과정에 숨은 가정 (assumption)은 그 인과관계가 선형적 (linear) 이라는 것이다. 즉, 사고를 일으킨 원인을 찾아서, 그 원인을 제거하게 된다면, 그와 비슷하거나 동일한 사고는 앞으로 발생하지 않으리라는 믿음이다. 조선소 노동자의 추락사고의 원인이 안전벨트의 미착용과 추락방지망의 미설치인 경우, 이를 교육시키고 관리감독하여 재발을 방지하겠다고 하는 대책이 이러한 접근법에 기반한다. 제빵공장 노동자의 끼임 사고 원인이 기계 내부에 접근 방지 장치 (금속망, 인터락)가 없고, 관리감독 부족이라고 한다면, 기계에 안전 장치를 설치하고, 관리감독자를 추가배치하겠다고 하는 것도 선형적 접근법에 해당된다. 이를 뒷받침하는 주된 사고 발생의 이론이 소위 하인리히 (H.W. Heinrich) 의 법칙이다. 그 당시 하인리히는 보험회사의 직원이었는데, 그가 관리하던 사고들의 통계를 기반으로, 1931년 ‘산업재해의 예방: 과학적 접근법 (Industrial Accident Prevention: A Scientific Approach)’ 라는 책을 발표한다. 그 책에 따르면 중대한 사고 (예를 들면 사망사고) 1건이 발생하기까지는 29건의 중증 사고가, 300건의 경미한 사고가 발생한다는 1:29:300의 법칙을 내놓았다. 이 사고 발생은 발표 이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산업현장의 안전 관리 활동의 근간이 되어왔다. 즉, 중대재해 또는 사망사고를 예방하려면 그 보다 심각성이 덜한 경미사고 내지는 아차사고를 발견해서, 위험요소를 줄이려는 노력은 직종에 상관없이 보편화된 안전관리의 전략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접근법의 단점은 사고를 관찰하고, 재발방지를 위한 노력이 주로 그 사고를 일으키는 행위자, 즉 노동자의 행동에 초점을 맞춘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그러한 노동자의 행위를 유발하는 조직적, 문화적, 경제적, 그리고 시스템적인 요소들에 대해서는 큰 비중을 두지 않게 되었다.

현대의 산업이 고도화되고 거대해지면서 이러한 선형적 접근법만 가지고는 사고의 원인을 찾고 재발을 방지하는 대책을 세우는데 한계가 있다. 왜냐하면 사고가 발생하기까지에 이르는 과정이 상당히 복잡하고 (complex) 하고 비선형적 (non-linear) 이기 때문이다. 2014년에 발생한 세월호 사건만 보더라도, 세월호 침몰과 많은 탑승자 사망의 원인이 비단 선장과 선원들의 불안전한 행위에만 국한되기 보다는 배의 화물과 승객을 관리하는 해양수산부, 항만청, 그리고 해상 사고의 대응에 책임이 있는 해양경찰청의 재난대비 등 다양한 요소가 작용했다는 점을 우리는 배웠다. 국내에서 발생한 다른 사고에도 비슷한 선형적 접근법을 발견할 수 있다. 서울 구의역 지하철 보수 노동자 사망사고를 보면, 2인 1조 작업의 규정을 따르지 않은 것이 주요한 원인이라고 지적되었다. 하지만, 2인 1조 작업의 규정을 따르지 않은 것이 노동자 개인의 과실이거나 관리감독자의 책임 소홀에만 국한되는 문제일까? 왜 2인 1조 작업이 현실적으로 일어나기 힘든 구조적인 문제가 있지는 않을까? 대게, 그러한 구조적인 문제는 돈과 관련된 문제이거나, 해당 작업과 관련된 법적인 환경으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경비를 줄이기 위해 근무 시간을 촘촘히 짠다거나, 과도한 업무를 부여함으로써, 노동자는 안전에 대한 규정을 소홀히 할 수 밖에 없는 환경에 노출되는 것이다. 망자에게 질문을 할 수는 없겠지만, 만약 질문이 가능하다면, ‘이 작업을 할 때 사고를 내려는 의도가 있었습니까?’ 라는 질문에, 백이면 백 모두 ‘아니오, 그런 의도는 없었습니다’라고 답할 것이다.

이태원 참사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하는 것이 옳다고 본다. 단순히 사고의 원인을 ‘할로윈 행사에 참여하러 그 곳에 간 사람들의 생각없음’ 내지는 ‘대중들이 많이 몰리는 사고를 예측하지 못하고, 대비하지 못한 관할 경찰서 내지는 구청의 잘못’으로만 국한해서 보는 경향이 많다. 실제로 이러한 의견들이 인터넷 공간, 일부 언론들, 그리고 정치인들의 입에서 나오는 것이 현실이다. 또한 용산구청장과 용산경찰서 직원들에 대한 구속영장이 청구된 것만 보더라도, 이태원 참사의 원인 분석과 책임 규명이 말초적인 부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비선형적 접근법에 따르면, 이태원 참사는 사회의 여러가지 기능들이 서로 상호작용하면서 발생한 사고라고 생각한다. 우선, 과거 몇 해에 걸쳐 코로나로 인해 억눌려 지냈던 대중들이 관련 통제들이 느슨해지면서, 할로윈행사에 많은 인원들이 몰리게 되었다. 또한 할로윈이 이제는 젊은 사람들 사이에서 대중적인 인기를 얻게 되며, 사람들이 밀집해서 즐기는 이벤트가 된 점도 인지해야 한다. 동시에 일부 언론에서 주장하듯이, 대통령 집무실의 용산 이전으로 인한 경비와 마약 사범 단속에 경찰력이 많이 동원되며, 할로윈과 같은 대중 밀집 행사에 대한 대비가 미비한 점도 있었다. 이러한 요소들이 서로 복잡하게 얽히고 영향을 끼치면서 이태원 참사가 발생했다고 본다. 그렇다면, 과연 이 사고에 대한 책임은 누가 져야만 하는가?

궁극적인 책임은 정부와 지자체에 있다고 본다. 공공의 안전을 최종적으로 책임지는 주체가 바로 정부와 지자체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국민들로부터 위임받은 책임과 의무가 있다. 그 중에 하나가 바로 대중들의 건강과 안전을 책임지는 일이다. 코로나가 터졌을 때 왜 질병관리청에서는 대응체계와 규범을 만들어 대중들을 통제하는가? 시민의 건강과 안녕의 유지가 정부와 지자체가 존재하는 이유이기 때문이다. 이태원 참사에도 동일한 기준을 적용할 수 있다. 사업장에서 발생하는 안전 사고에 대해서 사업주 (최고 책임자)가 궁극적인 책임을 지듯이, 시민의 안전에 대해서는 정부와 지자체가 궁극적인 대비와 대응의 책임이 있다고 본다.

내가 일하는 학교에서 가을학기 주말이 되면 미식 축구 경기가 열린다. 경기장에 대략 4만명 정도가 수용 가능하고, 때에 따라서는 5~6만명 정도가 경기장과 그 주변에 밀집한다. 압사사고 또는 테러사고 등이 충분히 예상 가능한 시나리오다. 경기가 열리는 날, 경기장을 가장 관찰할 수 있는 고가 도로에 이동식 경찰 통제센터가 만들어진다. 예상컨데, 현장에 나가 있는 경찰들을 통해 여러가지 정보를 습득하고, 비상시에 응급 출동을 지시하는 곳이라 생각한다. 이 작은 시골 동네의 미식 축구 경기에도 만에 하나 있을 공공 안전 사태에 대비하는 것이 정부와 지자체의 책임이라 생각한다. 이번 이태원 참사로 목숨을 잃은 희생자와 그 가족들, 그리고 이 참사로 인해 고통 받는 모든 분들에게 위로를 전하고 싶다. 안전을 연구하는 사람으로서 내게 주어진 역할과 의무도 충실히 할 생각이다.

Published by 따따블 주인장

저는 세상 속의 여러 가지 문제에 대해 고민하고 또 해결해 보려고 하는 평범한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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