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매일매일을 최종 디펜스 하듯이

박사 과정의 마지막 단계는 디펜스 (Defense) 라고 불리는 최종 시험 (Final Examination) 이다. 이등병이 군입대를 하면서 가장 기다리는 날이 제대 날짜라고 한다면, 박사생이 가장 기다리는 날은 바로 디펜스를 하는 날일 것이다. 디펜스를 하게 되면 공식적으로 박사가 되는 최종 관문을 통과한 것이나 다름 없다. 그래서 디펜스를 통과하면 지도교수와 커미티 멤버들이 Dr. Smith, Dr. Kim 이라고 불러주는 것이다.

디펜스는 문자 그대로 ‘방어’라는 의미다. 그렇다면, 어떤 ‘공격’으로의 방어를 의미하는 것일까? 학계에는 총은 없지만 전쟁터나 다름 없는 곳이다. 총과 총알 대신 음성과 잉크와 키보드로 전달되는 언어를 통해 새로운 지식들 사이에 전쟁이 일어나는 곳이다.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만의 지식적 무기를 자랑하고 또 상대방을 제압하려 든다. 박사 과정은 그러한 공격들을 잘 방어해 내면서 자신만의 새로운 지식을 생산해 내는 과정이다.

그 과정에는 많은 공격들이 있기 마련이다. 기존의 연구들은 잘 이해했는지에 대한 공격, 현재의 연구 문제가 잘 정의되었는지에 대한 공격, 그 연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데이터가 적절하게 수집되었는지에 대한 공격, 그 데이터를 연구 문제의 해결에 맞게 분석했는지에 대한 공격, 이 모든 과정을 일목요연하게 잘 문서화했는지에 대한 공격 등등, 이 전쟁에는 게릴라들이 산개해 있어서 언제 어떤 공격을 받을지 모른다. 이 모든 공격들을 잘 버텨내어 하나의 새로운 지식을 만들어 낼 수 있을 때 우리는 진정 박사라는 타이틀을 받게 되는 것이다. 사실 이런 공격들을 제대로 방어내 내지 못한다면 박사 이후에 회사로 가든, 학교로 가든 그 곳에서 요구되는 연구자로서의 성과를 내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그럼 누가 이런 공격들을 하는 것일까? 병서에도 나와 있듯이, 항상 적은 가까이에 있다. 바로 지도교수가 바로 가장 큰 적이자, 가장 빈번하게 공격을 하는 대상이다. 지도교수는 매주 만나는 미팅에서, 수시로 보내는 이메일에서, 내가 작성한 논문을 리뷰할 때에 다양한 무기로 나의 지식 세계에 무차별한 폭격을 날린다. 특히 나의 경우 지도교수와 짧게는 매주, 길게는 2주마다 약 30분에서 한 시간 정도 미팅을 해 왔다. 미팅은 주로 내가 지난 일주일 내지는 2주에 걸쳐 진행한 연구의 결과, 현재 진행 상황, 그리고 미래의 계획을 발표하고 검증받는 자리였다. 특히, 내가 공들여서 정리한 내용에 대해 지도교수가 회의적이거나 전혀 다른 의견을 제시할 때는 참으로 곤란했다. 지도 교수의 의견을 정면으로 부딪혀서 부정하자니, 연구의 진전이 없을 것 같고, 때로는 그런 의견 충돌이 감정 소비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았다. 특히 코로나 시국에 비대면의 미팅을 하다 보니 오해가 생길 여지도 많았다. 이런 이유들도 지도교수와의 미팅은 정말 큰 스트레스 유발 요인이었다. 오죽하면 미팅 하기 전날은 잠도 설치게 되고, 미팅이 끝날 때까지는 긴장을 유지해야만 했다. 내 연구실 동료는 지도교수와의 미팅 며칠 전부터 불면증에 시달린다고 하니, 지도교수와 벌이는 전쟁은 정말 피를 말리는 전쟁임에는 틀림없다. 하지만, 이 전쟁이야말로 박사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전투다. 매주 또는 격주에 걸쳐서 벌어지는 지도교수와의 미팅에서 나의 지식과 의견을 방어해 나가는 것이 박사 과정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디펜스라고 생각한다. 많은 박사생들이 자신의 지식이 지도교수에 비해 부족하거나, 혹은 지도교수의 권위에 대한 도전을 두려워 한다. 그러다보니, 지도교수가 하는 말이나 시키는 일을 비판 없이 그대로 수용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지도교수가 권위적이고, 학생이 수동적인 관계일 때 이런 일은 쉽게 일어난다.

제목에도 쓰여 있다 시피, 매일 매일을 박사 디펜스하듯이 하기를 권하는 바이다. 지도교수와 만나는 미팅이 곧 디펜스라고 생각해야 한다. 새로운 연구 결과와 향후 연구 방향을 제시함과 동시에 지도교수가 던지는 질문, 반박, 갑작스러운 의견 제시 등을 받아 치거나 피해야 한다. 말하긴 쉽지만, 실전에서는 힘든 조언이다. 일상을 디펜스하듯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논문도 열심히 읽어야 하고, 무슨 연구를 왜 해야 하는지에 대한 자기 논리가 확실히 서야 한다. 병사가 매일 매일 체력 단련을 하고 총 쏘는 법을 익히듯이, 박사생은 지식과 논리라는 기초 체력을 다지고, 커뮤니케이션과 프리젠테이션 스킬을 통해 그 지식과 논리를 효과적으로 전달하는 방법을 끊임 없이 훈련해야 한다. 이러한 일상을 살다 보면, 어느샌가 지도교수의 공격을 효과적으로 방어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지도교수가 하는 말 속에서 지식의 한계나 논리의 오류를 발견하고 정중하게 반박하거나, 주짓수처럼 절묘하게 피해가는 방법을 체득하게 될 것이다.

이렇게 매일 매일을 디펜스하듯이 살다 보면, 진정 최종 디펜스를 치를 즈음에는 아마 크게 상대할 적수가 많이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 설령 있다하더라도, 이미 산전수전 공중전을 통해 얻은 경험들이 몸과 마음 속에 남아 큰 무리 없이 공격들을 방어하는 자신을 보게 될 것이다.

Published by 따따블 주인장

저는 세상 속의 여러 가지 문제에 대해 고민하고 또 해결해 보려고 하는 평범한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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